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브란덴부르크 문 (문단 편집) === 건립 === [[파일:Karte_berlin_akzisemauer.png]] 1734년부터 1860년까지 존재한 [[베를린]] 관세벽과 그에 속한 18개의 문의 위치. Brandenburger Thor가 지금의 브란덴부르크 문이 있는 바로 그 자리이다. [[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]] 수도였던 [[베를린]]은 면적 891km^^2^^, 인구 400만에 달하는 지금의 모습과 달리 지금의 [[미테]](Mitte) 구 중에서도 슈프레 [[강]]에 떠 있는 작은 섬과 그 주위만 [[성형 요새|별모양 요새벽]]으로 둘러싼 작은 도시였다. 1701년 [[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]]이 [[프로이센 왕국]]으로 승격되고 [[베를린]]이 왕국의 [[수도(행정구역)|수도]]로 지정되면서 도시가 점점 성장해나감에 따라 1734년 [[국왕]] [[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]]가 기존의 요새벽을 허물고 몇 배로 커진 [[베를린]] 시가지를 완전히 둘러싼 새로운 성벽[* 방어상의 이유보다는 도시와 외곽의 경계를 구분하여 통행세를 걷기 위해 지은 것이다. 애초에 이름도 '[[베를린]] 관세벽(Berliner Zollmauer)'이다.]을 건설하였다. 이 새로운 성벽에는 시가지와 외곽을 연결하는 총 18개 문이 존재하였는데 지금 브란덴부르크 문이 있는 자리가 바로 그 문들 중 하나가 있던 자리로 예전 브란덴부르크 변경백령의 [[수도]][* 다만 중심지는 [[카를 4세]] 이후로 탕어뮌데였다.]였던 [[브란덴부르크안데어하펠]]로 향하는 문이기 때문에 브란덴부르크 문(Brandenburger Thor)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.[* 참고로, 이 [[베를린]] 세관벽 역시 대다수의 도심 내 성벽들이 그렇듯 일부를 제외하고 시가지 확장 과정에서 헐렸다.] 이후 1780년대 [[국왕]] [[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]]는 북[[유럽]]의 강국으로 성장한 [[프로이센]]의 국력을 과시하고 평화의 상징으로서 [[베를린]]에 새로운 관문이자 [[랜드마크]]를 건설할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. 새로운 관문의 자리는 당시 존재하던 브란덴부르크 문 자리로 결정되었으며 원래 있던 브란덴부르크 문을 허물고 계획에 따라 새로 세운 결과물이 바로 지금의 브란덴부르크 문. 카를 고트하르트 랑한스(Carl Gotthard Langhans)가 [[그리스]] [[아테네]]의 [[아크로폴리스]]를 참고하여 설계한 이 문은 1788년에 착공되어 3년만인 1791년 완성. 건설 때에는 평화의 문(Fridenstor)이란 이름이 붙었던 브란덴부르크 문 위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[[그리스]] 여신 [[에이레네]]와 그녀를 이끄는 사두마차(Qurdriga)가 조각됐다. [[신고전주의]] 대표적 걸작이기도 한 이 건물은 12개의 [[도리스]]식 기둥이 받치고 있었으며, [[베를린]]으로 향하는 5개의 도로가 건립 당시부터 뻗어있었다.[* 평민들에게는 양 쪽 맨 끝의 두 도로만을 이용하는게 허가됐다한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